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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5-11-04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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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따라 ‘하동포구’ 들어서면
하동 풍경 담은 ‘노래비’ 반겨줘
목도공원 송림선 은은한 솔향이…
가을햇살에 빛나는 ‘섬진강’ 윤슬
‘동정호’ 수양버들·핑크뮬리 장관
‘평사리 들녘’ 황금빛 하모니 힐링

비 그치자 기온 급강하다. 가을 실종. 가을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하는데 눈앞에 하동 악양 평사리 들판이 홀로그램처럼 뜬다. 지금 가면 황금빛이 일렁일 텐데. 한가운데 부부 소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며 내게 얼른 오라 손짓하는 듯하다. 평사리 들판이 남성적이라면, 그 옆 아름다운 동정호의 반짝이는 수면과 우아한 곡선은 얼마나 새마을금고 공제 여성적인가. 호수를 지나 들판으로 나가면 가을을 듬뿍 추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길면 행동이 느려진다. 가자, 하동포구 바다와 섬진강이 만나는 풍요의 하동으로!

절약잔물결에 일렁이는 섬진강 지류./도희주 작가/

잔물결에 일렁이는 섬진강 지류./도희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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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랗게 물든 평사리 들녘. 파란빛과 황금빛이 햇살과 어우러지면서 연출되는 풍경이 장관이다./도희주 작가/

노랗게 공유형모기지 물든 평사리 들녘. 파란빛과 황금빛이 햇살과 어우러지면서 연출되는 풍경이 장관이다./도희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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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품은 상춘마을에 중평항이 있다= 진교IC를 지나 이내 남해 방면이다. 가을이 익는 시골의 오래된 지붕보다 키가 높은 감나무엔 다홍빛 감이 가지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어떤 집 감나무 맨 윗가지엔 두어 개의 감이 까치밥을 위해 남겨둔 듯하다.
들판엔 벼들이 담황빛으로 농도를 더해가며 농부들을 채근하기도 하고, 트랙터가 들녘을 조금씩 비워내고 있다. 지나치는 풍경에 농담을 걸거나 그들의 이야기를 귓등으로 듣는 사이 해안도로 방면이다. 내리막길에서 굴다리를 지나자 농촌과 어촌이 공존하고 있다. 바로 벼가 익어가는 논을 넘어 푸른 가을바다가 좍 펼쳐진다.

마을 입구 ‘상춘마을’ 표석 아래엔 이 마을이 ‘정기룡 장군 출생지’임을 알리고 있다. ‘정기룡장군상’은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안내판엔 ‘임진란의 맹호 정기룡 장군’의 일대기가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임진왜란 때 60전 60승을 거둔 조선 중기의 무신! 마을이 예사롭지 않고 기품이 느껴진다.

정기룡장군상.

정기룡장군상.

마을로 접어든다. 좁은 길. 서행이다. 등 굽은 노파가 유모차를 밀며 산책 중이다. 노파와 유모차의 쓸쓸한 그림자도 세월을 밀며 동행한다. 이마를 맞댄 지붕들 사이로 겨우 차 한 대 지나갈 수 있는 골목은 조선시대와 별로 달라지지 않았을 거 같다. 이내 바다에 닿았다. 중평항. 고요했다. 바로 앞엔 잘 조성된 ‘마르쉐(Marche) 광장’이 있다. 장터 혹은 시장의 프랑스어라고 한다. 어떤 남자 혼자 ‘광장’ 의자에 바다를 등지고 앉아 상념에 빠져 있다. 바다를 따라 천천히 달린다. 독특한 조형물이 눈에 든다. 팔등신의 연인이 주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벼운 스킨십 중이다. 엷은 미소와 함께 조형물과 오버랩하는 어떤 추억이 슬쩍 끼어든다. 아마도 이곳을 지나는 중년층 이상의 사람들이라면 청춘 시절을 추억하며 아쉬워할 테고, 연인들이라면 조형물과 자리를 바꾸고 싶을 것 같다.

상춘마을의 연인 조형물

상춘마을의 연인 조형물

◇솔향에 취하고, 윤슬에 반하다= 구례·하동 방면 섬진강대로다. 하동포구터널 지나 섬진강대로는 왼쪽 섬진강 줄기 따라 이어진다. 방풍림 같은 송림 사이 ‘하동포구’에 진입한다. 입구엔 왼쪽 ‘하동포구 아가씨’ 노래비와 오른쪽엔 ‘하동목도공원(옛 하동포구공원)’ 표석이 먼저 공원의 성격을 대변하고 있다. ‘하동포구 아가씨’는 1960년대 당시 정두수 작사가가 고향 하동 풍경을 담았다. 박춘석 작곡, 하춘화 노래로 당대 국민가요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최근 가요 프로에서도 심심찮게 불리고 있다.(가사는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세로쓰기로 새겨져 있지만 가독성을 위해 가로쓰기로 옮겨놓는다.)
쌍돛대 임을 싣고 포구로 들고
섬진강 맑은 물에 물새가 운다
쌍계사 쇠북소리 은은히 울 때
노을 진 물결 위엔 꽃잎이 진다
팔십 리 포구야 하동포구야
내 님 데려다 주오 내 님 데려다 주오
흐르는 저 구름을 머리에 이고
지리산 낙락장송 노을에 탄다
다도해 가는 길목 섬진강 물은
굽이쳐 흘러흘러 어디로 가나
팔십 리 포구야 하동포구야

내 님 데려다 주오

하동포구 노래비와 하동목도공원 표석.

하동포구 노래비와 하동목도공원 표석.

노래비 하단에는 ‘국제라이온스협회 355-J지구 제4지역 기념사업, 2006년 12월 2일’이 새겨져 있다. 표석 옆 수질현황전광판에는 수온과 PH(수소이온농도), 염분 등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다. 송림 사이를 걷는다. 은은한 솔향과 피톤치드는 무한으로 뿜뿜이다. 크게 심호흡한다. 편백보다 소나무의 피톤치드 배출량이 많다는 기록이 떠오른다. 심신이 정화되는 듯하다. 소나무 숲이 울창한 만큼 그늘이 넓고 깊어 햇볕은 바닥에 닿지 못한다. 강변 접안시설은 실제 소형 선박용 포구로 이용되고 있다. 공원 내엔 정자와 벤치 주차장 등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산책이든 휴식이든 손색이 없다. 솔향을 차에 가득 싣고 섬진강대로를 달린다. 왼쪽에 섬진강이 있지만 제대로 볼 수 없다. 편도 1차로에서 정차든 주차든 차 세울 데가 마땅치 않다. 조바심으로 전전긍긍인데 도로변 소음차단벽에 방황했을 담쟁이들의 궤적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 가느다란 줄기 끝자락에 이파리 몇 잎이 붉고 붉게 물들었다.
얼마나 갔을까. 주차 공간과 섬진강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드러났다. 하동문화예술복지회관. 같은 건물에 하동군민회관, 하동문화원, 하동아트갤러리가 있으며, 지척엔 하동군종합사회복지관이 섬진강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보기 드물게 사람들이 북적인다. 길 건너 섬진강 둑에 올랐다. 대자연의 정취에 나그네는 그저 입이 떡 벌어진다. 영원히 흐르고 흐를 섬진강. 상류의 물결과 하류의 물결을 각각 앵글에 담는다. 가을 햇살에 빛나는 윤슬은 단단해 보이는 데다 그 어떤 보석보다 더 빛난다.
◇명품정원 동정호와 진품들녘 평사리= 하동 구경도 식후경이다. 가볍게 식사할 곳을 찾았다. 오리전문점이 눈에 띄었다. ‘가볍지’ 않은 오리탕으로 배꼽시계의 알람을 껐다. 그새 차 내부 온도가 무려 34도. 가을볕이 뜨거워야 곡식이 잘 여물 수 있긴 한데 한여름을 능가한다. 평사리 들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동정호로 길을 낸다. 다시 이어지는 섬진강대로. 언뜻언뜻 섬진강의 모래섬이 보이길 몇 번. 마음 같아선 강변을 걷거나 맨발로 고운 모래밭을 밟고 싶어진다. ‘포구 80리’가 어디까지인지 얼추 짐작은 하지만 나목인 된 벚나무 가로수들이 길고 긴 그 거리를 시각적으로 더 늘려준다.

둔덕 교차로에서 우회전이다. 동정호와 마을을 핑크 뮬리가 연분홍색으로 경계선을 길게 그어놓고 있다. 동정호에 들어선다. 두꺼비가 눈을 ‘땡그랗게’ 뜨고 동정호가 생태습지라고 말한다. 동정호는 130여 종 생물이 서식하는 생태 보고다.

하동 악양루 방면 덱 로드.

하동 악양루 방면 덱 로드.

오른쪽엔 덱 로드가 호수와 습지로 구분해 놓고 악양루로 안내한다. 호숫가엔 노랑어리연꽃이 수면을 장식하며 바람이 들려주는 가을 소식에 귀 기울인다. 하트출렁다리는 허공을 이어놓고 분수대는 숨을 고르고 있다. 동정호의 배꼽 ‘녹차섬’이 호수의 중심, 가을의 중심 옴파로스(omphalos)다. 왼쪽 수양버들길을 걷는다. 세상 시름 주렴처럼 풀어놓고 동정호를 관망하는 듯하다. 나룻배 한 척은 물이 아닌 흙바닥에서 포토존으로 활용하는 듯하고 ‘녹차섬’으로 건너갈 수 있는 출렁다리는 보수공사 중으로 진입 차단이다. 속속들이 찾아보기보단 때로는 한발 물러서서 보는 게 더 아름다울 때가 있다. 동정호가 그렇다.
근처 ‘천국의 계단’을 오른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계단이 흔들리는지 세상이 흔들리는지 모를 지경이다. 멀미가 나서 아무래도 천국은 못 갈 것 같다. 부들부들 앵글을 잡는데 때마침 동정호에서 응원하듯이 분수가 솟구쳐 오른다.
동정호. 평사리 앞에 흐르던 악양천이 범람하여 생긴 습지를 인공 호수로 복원한 습지 호수라고 한다. 옆엔 습지를 생태공원으로 조성 중인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아치형 다리와 정자, 작은 연못, 산책로, 초가삼간 등이 적재적소에 자리하고 있다. 하동군에서 동정호와 더불어 ‘지방정원’과 ‘국가정원’ 지정을 위해 도전하고 있다는데, 가족이나 연인들이 함께 하루를 휴식하기엔 최적일 것 같다.
비로소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평사리 들녘을 마주한다. 초록과 황금빛과 햇살이 어우러지면서 농담(濃淡)이 섞여 들어 연출되는 하모니가 장관이다. 여느 가을 들녘이 그렇듯. 겨울·봄·여름·가을 사계절을 완전체로 품고 있다. 이제 곧 농부들의 걷어붙인 근육들이 부지런히 오가며 계절의 마지막 풍요를 추수할 것이다. 멀리 부부 소나무가 나그네 생각에 맞장구치듯 미소로 고개를 끄덕인다. 지리산 품이 더없이 넓고 따스하다.

〈여행 tip〉

하동목도공

하동목도공

-하동목도공원 : 하동군 하동읍 목도리 47-59에 위치. 과거 포구였음을 기념하기 위해 2002년 공원으로 조성됐다. 하동포구 80리(약 34㎞)는 섬진강 하구에서 남해까지 이어지는 물길이다.

섬진강

섬진강

-섬진강 : 고려 우왕 11년(1385년) 때 왜구의 침입에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가 나타나 울부짖으며 강을 가로막았다는 데서 유래했다. 두꺼비 섬(蟾), 나루 진(津)으로 섬진강 이름을 갖게 됐다. 왜구들은 두꺼비 떼에 놀라 광양 쪽으로 도망갔다고 한다.

동정호

동정호

-동정호 :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305-2 일대. 악양(岳陽) 지명이 중국 후난성(湖南省) 웨양시(岳陽市)와 같아 웨양에 있는 둥팅호(洞庭湖)의 이름을 빌려왔다고 한다. 호수 둘레는 약 1㎞ 남짓이며 생태습지원 전체 면적은 5만6000㎡이며, 두꺼비 생태이동통로, 생태산책로, 두꺼비 탐방로 등 복합생태문화공간이다.
도희주(동화작가)